러시아는 제정 러시아로서 유럽의 강대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지만, 혁명과 전쟁을 거치며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으로 재편되었다. 본문에서는 러시아 제국의 형성과 해체, 볼셰비키 혁명, 소련의 성립과 그 역사적 전환점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동방의 제국, 유럽을 뒤흔들다
러시아는 본래 키예프 루스(Kievan Rus’)에서 시작된 동슬라브계 국가의 전통을 계승한 나라다.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분열된 후, 모스크바 공국이 중심이 되어 세력을 확장하며 차츰 근대 러시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반 4세는 ‘이반 뇌제’라는 명칭으로 전제군주의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2세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는 점차 유럽식 개혁과 팽창주의를 통해 제국의 틀을 완성해나갔다. 표트르 대제는 서구화를 강력히 추진하며 군사, 행정, 사회 제도를 전면 개편하였다. 그는 러시아 제국을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올려놓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수도로 삼고, 발트해 진출과 북방 전쟁을 통해 스웨덴을 격파하였다. 예카테리나 2세는 내정과 외교 양면에서 제국의 영토를 확대하고 계몽 절대주의를 도입하며 ‘여제’로서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이러한 팽창과 개혁의 이면에는 농노제의 심화, 귀족 특권의 고착화, 민중의 피폐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농민 봉기와 혁명적 사상의 확산은 러시아 제국을 위태롭게 만들었으며, 로마노프 왕조는 점차 민중의 지지를 잃어갔다. 특히 1905년 러일전쟁의 패배와 피의 일요일 사건은 제정 러시아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이 전쟁은 러시아 사회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고, 군사적 실패와 식량난, 경제 붕괴는 민중 봉기를 촉진시켰다. 결국 1917년 2월 혁명으로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퇴위하게 되고, 수 세기에 걸친 제정 러시아는 역사의 무대에서 막을 내리게 된다.
볼셰비키 혁명과 소련의 탄생
1917년 러시아에는 두 차례의 혁명이 발생하였다.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된 후,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정책은 대중의 불만을 사그라들게 하지 못했다. 이 틈을 타 등장한 것이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당이었다. 레닌은 ‘빵, 평화, 토지’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민중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10월 혁명을 통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로써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 USSR)이 탄생하게 된다. 볼셰비키 정권은 지주계급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재분배하고, 산업 국유화, 은행 통합, 공장위원회의 권한 강화 등 급진적인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체제의 안착은 쉽지 않았다. 1918년부터 1922년까지 이어진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는 백군(왕당파), 외세 개입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여야 했다. 내전 속에서도 붉은 군대는 조직적이고 철저한 통제를 바탕으로 점차 전세를 유리하게 끌고 갔으며, 레닌은 ‘전시 공산주의’와 같은 경제 통제를 강화하였다. 결국 볼셰비키는 내전을 승리로 이끌며 체제를 공고히 하였다. 레닌 사후에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스탈린은 5개년 계획을 통해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하였고, 농업 집산화와 함께 강력한 독재 체제를 확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인민이 강제수용소(굴락)로 보내졌고, 숙청과 공포정치는 소련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동시에 소련은 빠르게 군사력과 산업력을 키워나갔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침공을 막아낸 중심 국가로 부상하였다. 전후에는 미국과 함께 냉전의 주축으로 세계 질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제국에서 이념국가로: 러시아의 역사적 전환
러시아 제국의 몰락과 소련의 탄생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닌, 국가 체제와 사회 구조, 이념의 대전환이었다. 황제 중심의 전제 군주제가 무너지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체제가 등장한 이 과정은 20세기 세계사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특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는 냉전 구도의 출발점은 바로 이 러시아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확장주의와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유럽형 제국주의 국가였다면, 소련은 노동자와 농민의 이름으로 새로운 사회 질서를 시도한 실험적 국가였다. 물론 이념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점점 커졌고, 공포 정치와 권력 독점이라는 부작용도 컸지만, 소련은 냉전 시대를 견인한 세계 2대 강국 중 하나로 성장했다.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공통점은 중앙집권과 강한 리더십에 대한 선호, 광대한 영토에 대한 통합욕구, 그리고 외세에 대한 경계심이다. 이들은 지금도 러시아 연방의 정치문화와 외교전략에 일정 부분 반영되고 있다. 푸틴 체제에서의 권위주의적 경향,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 서방과의 긴장 관계는 그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러시아를 이해하려면 제정 러시아의 전통과 소련 시절의 경험을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두 시기는 전혀 다른 이념을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강한 국가’에 대한 이상을 추구했다. 이는 러시아가 세계사에서 보여준 독특한 존재감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이며, 향후 국제 질서 속 러시아의 역할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관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