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제국의 중심지였지만, 중세 이후 수백 년간 분열된 도시국가 형태로 존재하였다. 19세기에는 통일운동을 통해 근대 국가로 재탄생하였고, 이후 왕정, 파시즘, 공화정을 거치며 현재의 민주국가로 발전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탈리아 통일과정과 그 후 현대사의 흐름을 정리한다.
분열의 땅에서 시작된 통일의 열망
이탈리아 반도는 고대 로마 제국의 본거지로서 유럽 문명의 중심에 서 있었으나, 제국의 몰락 이후 수세기 동안 분열과 외세 지배 속에서 통일된 정치 체제를 이루지 못했다.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 동안에는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나폴리, 로마 등 독립적인 도시국가들이 각자의 정치, 경제, 문화 체계를 유지하며 공존했다. 이러한 다양성은 문화적으로는 찬란한 르네상스를 낳았으나, 정치적으로는 통일된 민족국가의 형성을 지연시켰다. 이탈리아 반도는 오랜 시간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다.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열강은 이탈리아의 전략적 위치와 풍요로운 도시들을 두고 경쟁하였다. 특히 18세기와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이탈리아 각지에서 왕국과 공국, 교황령 등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안정되지 못한 정치 질서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된 상태는 점차 ‘이탈리아 민족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의식으로 연결되었다. 19세기 중엽, 유럽 전역에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물결이 확산되며, 이탈리아에서도 통일의 열망이 본격적으로 분출되었다. 지식인과 시민,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오스트리아와 교황청 등 외세의 지배를 거부하고 통일 국가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이 과정은 단순한 영토 병합을 넘어, 언어, 역사, 문화의 통일이라는 상징적 과제를 동반한 거대한 민족 프로젝트였다. 이탈리아 통일운동은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부흥)’라 불리며, 당시 유럽에서 가장 복잡하고 장기적인 통일 과정 중 하나로 손꼽힌다.
카보우르와 가리발디, 두 영웅의 통일 전략
이탈리아 통일은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중심 세력은 북부의 사르데냐 왕국이었다. 사르데냐의 총리 카밀로 카보우르는 정치 외교를 통해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는 프랑스와의 동맹을 통해 1859년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였고,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롬바르디아를 병합할 수 있었다. 한편 남부에서는 ‘붉은 셔츠단’을 이끌던 혁명가 주세페 가리발디가 활약하였다. 그는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해방시키며 남부 이탈리아를 통일의 대열에 편입시켰고, 결국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수립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사르데냐의 왕이었던 빅토르 에마누엘 2세가 이탈리아 국왕으로 등극하였으며, 이는 현대 이탈리아 국가의 시초로 간주된다. 그러나 통일은 완결되지 않았다. 로마와 베네치아는 여전히 교황청과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이탈리아는 프로이센과 동맹하여 베네치아를 획득하였고, 1870년에는 프랑스가 보불전쟁으로 인해 로마에서 철수하면서 로마를 병합하고 최종적으로 통일을 완성하였다. 이후 이탈리아는 단일 국가 체제로 전환되었지만, 북부와 남부의 경제 격차, 교황청과의 갈등, 사회적 불균형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내부 갈등은 20세기 초반에 들어서며 더욱 심화되었고, 결국 제1차 세계대전 후 혼란 속에서 파시즘이라는 극단적 정치 사상이 등장하게 된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1922년 ‘로마 진군’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였고, 파시스트 정권은 전체주의적 국가 체제를 확립하며 이탈리아를 제2차 세계대전의 주역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나 전쟁의 패배와 무솔리니의 몰락은 왕정 붕괴와 공화정 수립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열게 하였다.
현대 이탈리아의 탄생과 민주주의의 실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을 채택하였다. 1946년 국민투표를 통해 왕정을 폐지하고 이탈리아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이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어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이탈리아는 마샬 플랜과 유럽 통합의 흐름 속에서 경제 재건을 이룩하였고, 1957년에는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창설국으로 참여하며 유럽 통합의 핵심 주체로 발돋움하였다. 현대 이탈리아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유럽에서 중요한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였으며, 자동차(피아트), 패션(밀라노),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확보하였다. 또한 북부와 남부 간의 경제 격차, 정당 정치의 불안정성, 마피아와 같은 범죄 조직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으나,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다양한 정당이 연합과 분열을 반복하는 다당제를 특징으로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와 의회의 기능은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는 국제사회에서 유엔, NATO, G7 등 주요 국제기구의 일원으로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로마 교황청의 존재는 세계 종교사에서도 독보적인 상징성을 지닌다. 결국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제국의 유산, 르네상스의 문화적 정수, 분열과 통일의 정치사,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경험 등 복합적인 역사적 자산을 지닌 나라이다. 이처럼 복잡한 역사를 거쳐 온 이탈리아는 오늘날 유럽 통합과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역사적 여정은 통일의 이상, 국민국가의 형성, 정치 실험의 반복, 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흐름을 통해, 단순한 국가 발전사를 넘어 유럽 현대사 전반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