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슬람화, 제국주의 간섭, 왕정 시대, 그리고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역사를 지닌 국가다. 본문에서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성립부터 현대 이란의 정치 체제 형성까지의 역사 흐름을 살펴본다.
고대 문명의 중심, 페르시아의 유산
이란의 역사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제국 중 하나인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기원전 550~3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루스 대왕은 메디아, 리디아, 바빌로니아를 차례로 정복하며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고, 그의 후계자 다리우스 1세는 행정 조직과 도로망, 조세 체계를 정비하여 통합된 제국 체제를 완성하였다. ‘왕의 길’로 불리는 도로망은 고대 세계 교통의 혁신이었으며, 제국 내에서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한 통치 방식은 오늘날에도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페르시아 제국은 고대 근동에서 그리스 세계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는 후대의 셀레우코스 왕조, 파르티아, 사산 제국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사산 제국(224~651)은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비잔틴 제국과 경쟁하며 중세 초기 이란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그러나 7세기 중반 이슬람 세력의 확산으로 사산 제국은 멸망하고, 이란은 이슬람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수세기 동안 이란은 아랍계 우마이야·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으며, 중세에는 튀르크계 셀주크 왕조와 몽골계 일 칸국의 영향 아래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란 고유의 문화와 언어, 철학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슬람 문명 속에서 독자적인 페르시아적 전통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시아파 이슬람은 이란에서 국가적 종교로 자리 잡으며, 이후 이란이 중동에서 독자적인 정치·종교적 노선을 걷는 배경이 되었다. 이처럼 이란의 역사는 외세의 영향 속에서도 독립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해온 ‘지속과 변형’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근대화의 실험과 이슬람 혁명의 분출
19세기 후반부터 이란은 유럽 열강의 간섭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였다. 카자르 왕조는 영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놓였고, 이는 국가 주권의 약화와 경제 침탈로 이어졌다. 이란 국민들은 이러한 외세 개입에 저항하며 1906년 ‘입헌 혁명’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수립하였으나, 실질적인 권한은 여전히 왕과 외세가 장악하고 있었다. 1925년, 레자 샤 팔라비는 쿠데타로 카자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팔라비 왕조를 수립하였다. 그는 급속한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며 세속적 교육 제도, 여성의 권리 확대, 산업화, 철도 건설 등을 통해 서구식 국가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치적 탄압과 부패, 전통 가치의 억압은 국민의 반발을 야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의 아들 무함마드 레자 팔라비가 왕위를 계승하였고, 미국의 지원 아래 ‘백색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토지개혁과 산업화, 여성 참정권 등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부의 불균형과 도시-농촌 간 격차, 종교계와의 갈등을 심화시켰고, 왕정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다. 그 결과, 시아파 성직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혁명 세력이 전국적인 지지를 받으며 1979년 ‘이슬람 혁명’이 발생하였다. 이는 중동 최초의 이슬람 신정 체제 수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슬람 혁명은 서방에 대한 반발, 사회 정의와 종교적 순수성 회복, 반부패 운동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대중적 봉기였다. 혁명 이후 팔라비 왕조는 붕괴되었고, 호메이니는 최고 지도자(라흐바르)로서 새로운 정치 체제를 설계하였다. 이는 곧 입헌 구조와 이슬람 율법(샤리아)이 결합된 독특한 정치 형태, 즉 ‘이슬람 공화국’으로 이어진다.
전통과 이슬람, 현대 정치의 교차점
이란의 역사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문명과, 현대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이념 국가 사이의 거대한 스펙트럼을 포괄한다. 고대에는 다민족·다문화 제국을 운영하며 관용과 질서를 강조했던 반면, 현대 이란은 이슬람 율법에 기반한 엄격한 종교 체제를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이 두 체제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질서와 정체성을 구축하였지만, 모두 이란이라는 공동체의 지속성과 독립성을 지켜온 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슬람 공화국 체제는 국제사회에서 종종 논란이 되기도 한다. 핵 개발 문제, 여성의 권리 제한, 언론 통제 등은 서방 국가들과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세속주의와 개혁을 요구하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중동 내에서 독립적인 외교 정책과 강한 민족주의적 자긍심을 유지하며 자국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이란은 여전히 시, 건축, 영화,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동 문화권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으며, 페르시아어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고대 유산과 현대 정치가 복잡하게 얽힌 이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적 실험실’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현대 세계가 직면한 종교와 세속, 전통과 근대 사이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국가이기도 하다. 결국 이란의 역사는 극적인 변화와 지속성의 공존, 외세에 대한 저항과 자주성의 추구, 그리고 종교와 정치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진 독특한 진화의 과정이다. 그들은 과거 제국의 영광과 현대 정치의 역동성을 모두 품고 있으며, 이는 이란이라는 국가를 세계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어준다.